사진/ NCJW Greater Dallas
낙태 약물의 제조·유통·처방·제공을 전면적으로 차단하고자 했던 텍사스 상원 법안 2880(SB 2880)이 주 하원의 마감일을 넘기며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텍사스 내 낙태 접근권을 더욱 제한하려던 가장 강경한 입법 시도 중 하나로 평가됐던 상원법안 2880은 지난달 상원을 무난히 통과했지만, 하원 국정사무위원회(House State Affairs Committee)에서 수 주 동안 계류되다가 결국 마감 직전에야 통과됐다. 그러나 전체 본회의 상정 일정에 포함되지 못하면서 더 이상 논의가 불가능해졌다.
텍사스 생명권 단체(Texas Right to Life)의 존 시고(John Seago) 회장은 “하원이 이번 기회를 고의적으로 무산시킨 것이나 다름없다”며 “매우 중대한 실패”라고 비판했다.
SB 2880은 낙태 약물을 제조하거나 제공하는 모든 사람에게 최대 10만 달러의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태아를 위한 ‘위자료 청구권’을 확대하며, 주 검찰총장에게 ‘태아를 대신한 법적 소송’ 권한을 부여하는 등 전례 없는 조항들을 포함했다.
또한 이 법은 텍사스 주 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리는 것을 막고, 만약 판결이 내려질 경우 해당 판사를 상대로도 10만 달러의 소송이 가능하다는 내용도 담고 있어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 ‘삼권분립 위반’이라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이번 법안이 제때 본회의에 올라가지 못한 책임을 두고 텍사스 보수 진영 내부에서도 책임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공화당 소속인 켄 킹(Ken King) 하원 국정사무위원장이 3주간 해당 법안을 상정하지 않고 지연시킨 것을 두고 강한 비판이 쏟아졌다.
포트워스 지역의 공화당 하원의원 네이트 샤츠라인(Nate Schatzline)은 “수만 명의 태아를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을 킹 위원장이 고의로 무산시킨다면, 공화당은 그를 반드시 책임지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킹 의원은 텍사스 하원에서 비교적 온건한 공화당 인사로 분류되며, 그에 대한 비판은 보수 진영의 분열을 상징하는 사례로도 해석된다.
이번 입법 실패는 텍사스 유권자들의 변화된 여론을 반영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텍사스 유권자 대다수가 낙태 약물 제공자에 대한 민간소송을 허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도 유권자를 의식한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이 법안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낸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번 회기 동안 텍사스 의회는 학교 바우처, THC 규제, 보석 제도 개편, 선거 관련 법안 등 여러 보수적 현안을 동시에 다루고 있어 낙태 문제의 우선순위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시고 회장은 이번 회기 종료 전 다른 법안에 SB 2880의 내용을 일부 삽입하거나 향후 특별회기에서 재논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현시점에서는 가능성이 낮다”고 인정했다.
반면, 낙태 권리 옹호 단체들은 이번 법안의 좌초를 “중대한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생식권리센터(Center for Reproductive Rights)의 몰리 듀안(Molly Duane) 선임 변호사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텍사스에서는 어떤 극단적인 반(反)낙태 법안도 손쉽게 통과되던 시절이 있었다”며 “지금은 명백히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안미향 기자 [email protected]